室町将軍 - 戦乱と美の足利十五代 -
전시명 :
무로마치 쇼군 -전란과 예술 속의 아시카가 15대-
전시기간 :
2019년 7월 13일(토) ~ 9월 1일(일)
휴관일 :
월요일
※단, 7월 15일(월/공휴일), 8월 12일(월/공휴일)은 개관
7월 16일(화)은 휴관
개관시간 :
일요일·화요일~목요일
9시 30분 ~ 17시 (입장은 16시 30분까지)
금요일・토요일 <야간개관>
9시 30분 ~ 20시 (입장은 19시 30분까지)
관람료 :
일반 1,600엔 (1,400엔)
고등학생 및 대학생 1,000엔 (800엔)
초등학생 및 중학생 600엔 (400엔)
<야간 할인 요금>
일반 1,400엔
고등학생 및 대학생 800엔
초등학생 및 중학생 400엔
*야간 개관 당일 17시 이후에 당관 매표소에서 판매. 야간 할인 요금으로 구입하신 관람권은 17시 이후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특별전 관람권으로 4층 <문화교류전시실(상설전)>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학생요금을 적용받으실 경우에는 학생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 ) 는 단체 요금입니다. (20명이상)
*( ) 는 만 65세 이상 관람객에게도 적용됩니다. 생년월일을 알 수 있는 신분증(학생증,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해 주십시오.

*장애인 수첩 등을 지참하신 분 및 그 보호자 1명은 관람료가 무료입니다. 장애인 수첩 등을 제시해 주십시오.
작품목록 :
  PDF
※전시기간 중 전시 교체가 있습니다.

<한국어 지원 안내>

이 특별전에는 한국어 전시해설문음성가이드(유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기간 중 전시 교체가 있는 관계로 가이드의 구성이 일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음성 가이드 이용요금 : 1대 550엔

<인사말>

 초대 쇼군(將軍)인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 尊氏)부터 15대에 걸쳐 정권을 잡았던 무로마치 막부. 교토를 거점으로 하는 무가 정권이 탄생하여 초기 60여년은 조정이 양분되는 남북조(南北朝) 시대, 후반기는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들이 패권 쟁탈을 일삼는 전국(戰國) 시대와 겹칩니다. 일본사를 양분하는 대변혁기로, 초대 쇼군 다카우지부터 15대 요시아키(義昭)까지의 역대 쇼군은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약 240여년에 걸쳐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결코 안정된 시대는 아니었으나 3대 쇼군 요시미쓰(義滿), 8대 쇼군 요시마사(義政)를 비롯한 쇼군들이 자신의 정체성인 무가(武家) 문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헤이안 시대 이래 전통을 이어온 조정 관리층의 공가(公家) 문화와 동아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전해진 대륙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독자적인 가치관과 미적 세계를 일구어냈습니다. 당시의 권력자인 쇼군들의 견인 속에서 향유된 예술 문화는 많은 사람이 추종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일본인의 정서에 부합하여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역대 쇼군의 초상을 비롯한 쇼군 관련 문화재를 바탕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영고성쇠와 쇼군들의 개성 넘치는 매력에 접근하여 그들이 사랑하고 가치를 부여했던 명품을 통해 무로마치 시대의 다채로운 예술 문화를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특별전 개최를 위해 귀중한 작품을 출품해 주신 소장자 여러분을 비롯하여 협력 및 협찬을 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9년 7월
주최자


<전시 소개>

무로마치 쇼군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관점

가마쿠라나 에도의 쇼군과 달리, 정치 및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쇼군들의 개성과 리더십에 주목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무로마치 쇼군상”에 접근합니다.

일급 자료와 쇼군의 수장품으로 살펴보는 무로마치 문화의 정수

일급 회화 및 문헌 자료와 쇼군의 수장품을 통해 이후 일본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무로마치 쇼군의 문화적 영위에 대해 소개합니다.

무로마치 쇼군과의 관련성에 초점을 맞춰 엄선한 총 134점(국보 14건, 중요문화재 71건)의 문화재를 한자리에 공개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쇼군 15대에 걸친 약 240년을 훑어보는 전시회입니다. 교토 도지인 절(等持院)의 아시카가 쇼군 좌상 13구 전체를 최초로 사찰 외부에서 공개합니다.


제1장 남북조의 동란과 아시카가 다카우지


1305년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 尊氏)는 겐지(源氏) 명문가인 아시카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시카가 가문은 가마쿠라 막부의 유력 무사였으나 다카우지가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의 막부 토벌 활동에 가담하여 막부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다카우지는 머지않아 고다이고 천황과 갈라섰고 1336년에 동생 다다요시(直義)와 함께 교토에 새 정권(무로마치 막부)을 수립했다. 다카우지는 무가(武家)의 우두머리로서 막부를 이끄는 한편 선종을 옹호하여 선승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에 귀의하였고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한 덴류지 절의 건립과 대장경의 서사(書寫) 사업 등 다양한 법사 활동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덴류지 절의 창건 자금을 염출하고자 중국 원나라에 무역선을 파견했는데, 이는 이후 3대 쇼군 요시미쓰(義滿)의 주도로 시작되는 명나라와 일본의 감합(勘合) 무역에도 영향을 주었다.

진짜 다카우지는 접니다.


足利尊氏像
히로시마현지정문화재 아시카가 다카우지 초상
남북조~무로마치 시대 / 14~15세기
히로시마, 조도지 절(淨土寺) 소장

다자이후에서 교토로, 진격에 나섰음을 알리는 밀서


足利尊氏御教書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교서
남북조 시대 / 1336년
교토, 이와시미즈하치만궁(신사) 소장

다카우지가 애용했던 부채


日月図軍扇
일월도 군진 지휘용 부채
아시카가 다카우지 사용
남북조 시대 / 14세기
규슈국립박물관 소장

과거 다카우지로 여겨져 온 초상화, 화압은 2대 쇼군 요시아키라


騎馬武者像
중요문화재 기마 무사상
남북조 시대 / 14세기
교토,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전시기간:7월 13일 ~ 8월 11일

제2장 무로마치의 영화 - 요시미쓰·요시모치와 외래 예술품 장엄 문화


남북조 시대의 동란이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 義滿)는 불과 11세에 3대 쇼군이 된다. 요시미쓰는 교묘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공무(公武) 융합과 남북조 통일, 다이묘 세력의 통제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여 쇼군의 권력 강화를 이룩해 나갔다. 또, 명나라와의 감합(勘合) 무역을 강력히 추진하여 아시아 각지의 진귀품인 ‘외래 예술품[唐物]’, 특히 최고봉의 중국 서화와 공예품을 입수하였고 이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쇼군의 권위를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그 위광을 이어받은 4대 요시모치(義持)는 막부 정치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요시미쓰 이상으로 선종과 중국 유학(儒學)을 애호하여 자신 또한 높은 수준의 서화를 즐겼다. 요시미쓰가 확립한 외래 예술품 장엄 문화와 응접 공간 장식 문화는 요시모치와 그 이후의 역대 쇼군의 주도하에 계승되고 발전해 갔다.

영화를 이룬 “일본 국왕”


足利義満像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요시미쓰 초상
무로마치 시대 / 15세기
교토, 로쿠온지 절(鹿苑寺) 소장
※전시기간: 8월 6일 ~ 9월 1일

막부의 체제를 확립시킨 쇼군


足利義持像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요시모치 초상
무로마치 시대 / 1412년 찬
교토, 지사이인 절(慈濟院) 소장

중국 황제가 보낸 명일(明日) 통호(通好)의 증표


永楽帝勅書
중요문화재 영락제 칙서
중국 명시대 / 1407년
교토, 쇼코쿠지 절(相國寺) 소장
※전시기간: 8월 6일 ~ 9월 1일

4대 쇼군 요시모치가 곁에 둔 걸작 선종화


瓢鮎図
국보 표주박과 메기[瓢點圖]
조세쓰 필
무로마치 시대 / 15세기
교토, 다이조인 절(退藏院) 소장
※전시기간: 7월 13일 ~ 8월 11일

제3장 쇼군 권력의 동요와 성숙된 문화 - 요시노리·요시마사의 시대


형 요시모치가 죽자 ‘제비뽑기’로 6대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 義敎)는 아버지 요시미쓰를 본보기로 하여 막부를 견인하였고 외래 예술품 등 쇼군 가문의 컬렉션인 ‘어물(御物)’을 한층 더 내실화하였다. 그러나 그의 강압적인 방식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비명횡사하게 되었다. 요시노리의 아들인 8대 요시마사(義政)의 치세는 교토에 전대미문의 피해를 가져왔으며 전국(戰國) 시대의 서막으로 불리는 오닌의 난(應仁之亂)과 시기가 겹친다. 유력 다이묘(大名)들의 권력 투쟁에 차기 쇼군 자리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면서 11년간 전란이 계속되었다. 요시노리의 죽음과 오닌의 난으로 무로마치 쇼군의 정치 권력이 크게 쇠약해졌다. 한편 문화적인 권위는 유지되어 막부의 의례 및 행사의 장소인 쇼군 저택의 사랑채를 꾸미는 응접 공간 장식 및 예능 문화는 이 시대에 한층 세련되고 발전되었다.

제비뽑기로 뽑혔으며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한 쇼군


足利義教像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요시노리 초상
무로마치 시대 / 1458년 찬
아이치, 묘코지 절(妙興寺) 소장
※전시기간: 8월 6일 ~ 9월 1일

정위대장군의 위풍, 6대 쇼군 요시노리의 갑옷


赤糸威肩白鎧
중요문화재 요로이 형식 갑옷
아시카가 요시노리 사용 / 아시카가 요시마사 봉납
시마네, 이즈모대사(신사)
※전시기간: 8월 6일 ~ 9월 1일

호화찬란한 노(能) 의상


藍紅紋紗地大極図印金狩衣
중요문화재 인금 태극 무늬 가리기누(겉옷)
무로마치 시대 / 16세기
야마가타, 구로카와상좌 소장
※전시기간: 8월 6일 ~ 9월 1일

8대 쇼군 요시마사의 전속 화가, 가노파 창시자의 대표작


周茂叔愛蓮図
국보 연꽃을 사랑한 주무숙(周茂叔愛蓮圖)
가노 마사노부 필
무로마치 시대 / 15세기
규슈국립박물관 소장
※전시기간: 7월 13일 ~ 8월 11일

제4장 전국 시대의 쇼군들 - 유랑하는 쇼군과 무로마치 막부의 종언


11년에 걸친 오닌의 난, 거듭되는 기근과 민중 봉기 등으로 15세기 후반 이후 무로마치 막부가 약체화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주국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벌이는 군웅할거의 전국 시대에 돌입한다. 쇼군은 자신의 존립을 다이묘들에게 의존해야 했으며 그들의 패권 싸움에 휘말려 일족끼리 쇼군 자리를 쟁탈했다. 10대 요시타네(義稙)는 교토에서 쫓겨나 각 영주국을 유랑했으며 요시타네를 쫓아낸 11대 요시즈미(義澄)와 12대 요시하루(義晴)도 교토에서 쫓겨났다. 13대 요시테루(義輝)는 신하에게 살해되었으며 마지막 쇼군인 15대 요시아키(義昭)가 1573년에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에서 쫓겨나면서 무로마치 막부는 종언을 맞이했다. 그러나 전국 시대의 쇼군들은 긍지와 막부 복권의 뜻을 잃지 않고 다음 시대에도 위광과 구심력을 유지해 나갔다.

쇼군의 저택이 그려진 가장 오래된 병풍


洛中洛外図屏風〈歴博甲本〉(部分)
중요문화재 낙중낙외도 병풍 <역사민속박물관 갑본> (일부)
무로마치 시대 / 16세기
지바,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전시기간: 7월 13일 ~ 8월 11일

오다 노부나가와 우에스기 겐신을 따른 검호(劍豪) 쇼군


足利義輝像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요시테루 초상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1577년 찬
지바,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전시기간: 7월 13일 ~ 8월 11일

마지막 쇼군, 만년의 자필 편지


周茂叔愛蓮図
중요문화재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서한
아시카가 요시아키 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1593년
일본, 문화청 소장

파격 그 자체, 13대 쇼군 요시테루의 명도(名刀)


太刀 銘 長光(大般若長光)
국보 “나가미쓰(長光)”가 새겨진 칼
가마쿠라 시대 / 13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사찰 외부에서 최초 공개

전체 13구의 쇼군 좌상이 규슈에 집결!


초대 다카우지
尊氏
인망이 두터웠던 무가의 대들보
2대 요시아키라
義詮
권력을 확립시킨 중심인물
3대 요시미쓰
義満
압도적인 카리스마 쇼군
4대 요시모치
義持
유일무이의 지성파 쇼군
6대 요시노리
義教
신에게 선택받은 쇼군
7대 요시카쓰
義勝
미소를 띤 어린 쇼군
8대 요시마사
義政
난세를 초래한 문화인
9대 요시히사
義尚
전쟁터에서 죽은 젊은 쇼군
10대 요시타네
義稙
다시 돌아온 집념의 쇼군
11대 요시즈미
義澄
추방 당한 쇼군
12대 요시하루
義晴
비와 호수에서 막부 부흥을 꿈꾼 쇼군
13대 요시테루
義輝
칼에 무너져 버린 무념의 쇼군
15대 요시아키
義昭
교토에 돌아갈 꿈을 못다 이룬 쇼군
아시카가 쇼군 좌상
무로마치~에도 시대
교토, 도지인 절(等持院)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