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耶
加耶

특별전

가야

전시기간:
전시장소:
규슈국립박물관 3층 특별전시실
개관시간:
일요일, 화요일-목요일 9시 30분-17시(입장은 16시 30분까지)
금요일 및 토요일(야간개관) 9시 30분-20시(입장은 19시 30분까지)
*야간 개관 실시 여부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휴관일:
월요일
관람료:
일반 1,700엔(1,500엔)
고등학생, 대학생 1,000엔(800엔)
초등학생, 중학생 600엔(400엔)

*괄호 내 금액은 전시기간 시작 전 사전 예매 시의 요금입니다. (판매 기간: 10월 14일(금)-1월 23일(월))
*상기 요금으로 4층 ‘문화교류전(상설전)’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대학생 이하이신 분은 학생증이나 학생수첩을 지참해 주십시오.
무료 관람 대상은 하기와 같습니다.(증명 서류 제시 등이 필요합니다.)

  • 미취학 아동
  • 장애인 수첩 등을 지참하신 분 및 그 보호자 1명
  • 무료 관람권을 소지하신 분
  • 규슈국립박물관 동우회 특별전관람권을 소지하신 분
  • 규슈국립박물관 찬조회원이신 분
  • 국립문화재기구 특별지원자 및 찬조회원, 세이후(淸風)회원
  • ICOM 회원
  • 일본박물관협회 회원

사전 예매권 판매소(판매 기간: 10월 14일-1월 23일)

・ARTNE 티켓 온라인
・로손티켓(L CODE: 81904)
・니시테쓰 덴진 정기권 발매소(니시테쓰 후쿠오카역 솔라리아 스테이지 빌딩 1층)
・규슈국립박물관 문화상품점(휴관일 제외)
・아크로스 후쿠오카 티켓 센터

당일 입장권 판매소

・ARTNE 티켓 온라인
・로손티켓(L CODE: 81904)
・규슈국립박물관 1층 입장권 판매소
・아크로스 후쿠오카 티켓 센터

출품 목록:

고대 한반도와 왜국의 교류에 다가가는 전시의 결정판!

가야는 3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한반도 중남부에서 번성한 나라들의 총칭입니다.

철로 번영하고, 금으로 장식한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고훈시대 일본에도 다양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신 연구 성과에 근거하여 가야의 전신인 변한을 시작으로 562년 대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가야의 흥망사를 살펴봅니다. 또한 가야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부터 일본 열도로 건너온 ‘도래인’들이 가져온 문화와 기술에 주목하여, 발굴 조사 출토품을 통해 일본 문화의 형성 과정에 다가갑니다.

대가야

대가야의 왕, 여기에 있다

《韓国宝物》金銅冠

《한국 보물》 금동관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5세기 중엽
한국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계명대학교박물관)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 역대 왕들의 묘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금동관에는 가운데 커다란 세움 장식을 부착하고, 세부에 이르기까지 작은 점으로 물결 모양을 나타내었다.

대가야

금사슬은 대가야의 장식

金製耳飾り

금제 귀걸이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6세기 전반
한국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오른쪽만 전시

대가야의 귀걸이는 사슬 사용을 선호한다. 사슬 끝에 다는 장식을 치자 열매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6세기에 보여지는 특징으로 일본에서도 각지에 그 예가 존재한다.

아라가야

철의 나라,
가야의 증거

有刺利器

미늘쇠

함안 도항리(문) 10호분 출토
4세기 말-5세기 전반
한국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덩이쇠를 가공하여 만든 의식용 도구. 둘레에 새의 모습을 표현했다. 덩이쇠는 철기 제조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화폐의 역할도 하였으며 껴묻거리로서도 사용되었다.

금관가야

소용돌이 모양으로 장식하는 무인

短甲

판갑옷

김해 퇴래리 출토로 전해짐
4세기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로 번영한 한편, 주위에 적 또한 존재했던 가야에서는 갑옷도 발달하였다. 세로로 긴 철판을 이어 만들었으며, 소용돌이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대가야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춘 말

馬冑

말투구

합천 옥전 M3호분 출토
5세기 후반
한국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5세기에는 말갖춤이 발달하여 한반도 각지에서 생산되었는데, 말투구는 귀중한 것이다. 대가야 유력자의 묘소였던 옥전 고분군의 전성기를 나타낸다.

대가야

신라로, 그리고 지중해로

ガラス容器

유리제 용기

합천 옥전 M1호분 출토
5세기 후반
한국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대가야의 세력하에 있던 옥전 고분군의 사람들은 5세기 후반 경 동쪽의 신라와도 교류했다. 멀리 지중해의 세계와 연결되는 유리제 용기는 신라를 통해 가야에 들어왔다.

금관가야

죽은 이의 영혼을 나르는 새

鴨形土器

오리모양 토기

김해 망덕리I-194호묘 출토
4세기
한국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오리 모양의 용기는 3세기 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 오리 머리 위에 작은 사람이 엎드린 듯 올라 있다. 3세기 『위서』에 따르면 새는 죽은 이의 영혼의 매개자였다.

고분에 서 있는 도래인의 패션

《千葉県指定文化財》渡来人形埴輪

《지바현 지정문화재》 도래인모양 하니와

지바현 이치하라시 야마쿠라 1호분 출토
6세기
이시하라시교육위원회 소장

손이 가려질 정도로 긴 통소매는 도래인의 옷차림이다. 형상 하니와는 고분에서의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 생각되며, 일본 간토 지방에서의 도래인의 활약을 나타내고 있다.

바다를 건넌 숙녀

《重要文化財》金製垂飾付耳飾り

《중요문화재》 금제 드리개 달린 귀걸이

나라현 가시하라시 니자와센즈카 126호분 출토
5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니자와센즈카에 잠든 화려하게 단장된 고귀한 여성. 귀걸이의 사슬은 대가야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 여성은 이 외에도 금반지와 금은의 팔찌를 착용하고 일본에서 만든 비취 곱은옥 등을 지니고 있었다.

규슈에서 처음 공개되는
야요이시대의 가장 긴 쇠검

长野县宝渦巻文装飾付鉄剣

《나가노현 보물》 궐수모양 쇠검

나가노현 기지마다이라촌 네쓰카유적 출토
2-3세기
기지마다이라촌교육위원회 소장

네쓰카유적에서는 변한(가야의 전신)의 철로 만든 검 외에 한국의 토기도 출토되었다. 야요이시대 말기, 동일본 내륙까지 교류가 확대되었다.

가야에도 수출된 왜의 갑옷

甲冑

갑옷과 투구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 오타차우스즈카고분 출토
5세기
아사쿠라시교육위원회 소장

가로로 긴 철판을 사용한 갑옷은 일본에서 발달했다. 가야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5세기 중엽에는 이와 같은 갑옷과 투구가 가야에도 수출되었다.

최초의 목장

《四條畷市指定文化財》仔馬形埴輪

《시조나와테시 지정문화재》 망아지모양 하니와

오사카부 시조나와테시 시노부가오카에키마에유적 출토
6세기
시조나와테시교육위원회 소장

승마 풍습은 한반도로부터 전해져, 말을 사육하기 위한 목장도 정비되었다. 아직 말갖춤이 없는 망아지를 나타낸 하니와를 통해 당시 목장의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야란

한반도 남부에서는 철 생산을 바탕으로 3세기 무렵 각지의 세력이 성장하여, 금으로 몸을 단장하고 커다란 고분을 축조하는 왕들이 등장했다. 가야라 총칭되는 여러 나라들은 느슨히 제휴하며 동쪽의 신라, 서쪽의 백제와 중국, 북쪽의 고구려, 남쪽의 왜(일본) 그리고 난세이 제도와 교류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네 나라를 소개한다.

加耶とは

최초의 가야 금관가야

위지왜인전에도 등장하는 ‘구야한국’에서 성장하여 최초로 ‘가야’라 불리며 4세기에 번영했다. 왕릉은 대성동 고분군.

개성있는 가야 아라가야

덩이쇠를 가공해 만든 미늘쇠, 토기에 낸 불꽃모양의 구멍, 회전하는 바퀴가 달린 토기 등 개성적인 조형이 넘친다. 왕릉은 말이산 고분군.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가야 소가야

바다에 면하고 왜(일본)와도 관계가 깊다. 대가야와 왜 사이를 소가야가 중개했다. 왕릉은 송학동 고분군.

최강의 가야 대가야

5세기 이후 대두하여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보냈다. 다른 가야 각국과 함께 마지막까지 신라에 대항했다. 왕릉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

加耶とは

고령 지산동 고분군

加耶とは

합천 옥전 고분군